200520 Post @__seung__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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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다 끄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쩐지 영 자세가 불편해 눈을 감은 채로 이리저리 베개를 뒤척이던 중 툭, 하고 무언가 손등에 부딪혔다. 머리맡에 뭐든 두고 자는 습관이 있던 나는 별생각 없이 휴대폰 잠금화면의 불빛으로 겨우 물건의 정체를 확인해 보았다.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소란”이었다. 음악의 숲에도 모신 적이 있던 시인이고, 첫 만남에 나눴던 몇몇 대화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겨주신 분이라 (마침 음악의 숲이 끝난 후유증도 적잖이 앓고 있던 터라) 자기 전에 몇 페이지라도 읽어볼까. 했지만… 도저히 침대를 벗어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찌할까 고민하던 순간에 이미 나는 휴대폰 후레쉬를 켜고 있었고 , 25년을 갈고닦은 비장의 자세인 ‘모로 눕기’를 시전하며 오른팔을 고정한 채 견고하게(우스꽝스럽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 왜 이래. 왜 자꾸 읽혀. 나 팔 아픈데. 아픈데 좋다. 하며 퍽 소란스럽게 읽다 보니 꽤나 읽어버린 것이었다. 

예기치 않은 만남 덕에 잠은 달아났지만 달아난 잠 이상으로 달큰한 마음과 함께 누워 있었다. 몹시 불편한 자세였음에도, 편안했다. 문득 ‘귀하다’고 생각했다. 귀하다는 건 흔하지 않다는 뜻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흔함을 오롯이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놓여 있는 것들을 그대로 놓아두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놓고도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너무 흔해서, 당연해서, 무감해진 것들을 감각하는 일. 상실을 일깨우는 일. 그 역시 귀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흔한 마음’은 ‘흐린 마음’이 아니라고 시인은 촘촘한 여백으로 말해주는(드러내는) 것 같았다. 때로는 흘려 쓴 듯 때로는 지워낸 듯. 그러나 꾸준히 ‘어린’ 마음으로. 
좋은 책 선물해 주신 민정 쓰앵님 @nandanalda 과 박연준 시인 @gkwlangkwlan 께 감사합니다☺️ ㅤ

P.S 
사진에 나온 꼭지에서는 살짝 눈물을 흘릴뻔했다. 차마 카메라 뒤에 있는 나를 찍을 순 없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