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1 Post @__seung__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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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 delpy – A waltz for a night.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 며칠 계속 이 노래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들어야지 들어야지 생각만 하다 드디어 찾아 들었는데, 음악만 듣자니 왠지 조금 섭섭해서 비포선셋의 명장면과 함께!
역시 좋은 건 그냥 좋은 거구나😂

듣다 보니 문득 2년 전 아이즈라는 매체를 통해 썼던 비포 시리즈 추천글?도 떠올라서 다시 읽어 보는데… 심하게 가을 탔나 저때..? 아무튼 날 잡고 다시 정주행 해야겠다😋😋 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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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추위를 잘 타는 나로서는 외출하기 전 옷장 구석에 밀어 넣어둔 외투들을 뒤적이는 횟수가 늘었다. 지난한 겨울이 다가오는 때, 이맘때쯤엔 가지도 못할 유럽행 비행기 표를 괜히 한 번씩 찾아보곤 한다. 항공권을 검색하고, 구글 앱을 켠다. 어디가 좋을지 생각하며 여러 나라의 이름들을 더듬어 가다 보면, 어느새 상상으로나마 유럽 전역을 횡단하고 있다. 뜻하지 않게 불시착한 어느 도시에서 문득 말이 잘 통하고 마음에 드는 누군가와 마주치게 된다면, 혹은 뜻하지 않게 하루를 꼬박 그 사람과 함께 보내게 된다면. 마치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나오는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처럼.


‘비포 선라이즈’(1996)를 시작으로 ‘비포 선셋’(2004), ‘비포 미드나잇’(2013)까지 총 3부작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비포(before) 시리즈’는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감독을 맡고 직접 각본에도 참여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제시와 셀린이 각각 20대에서 30대로, 30대에서 40대로 접어드는 동시에 현실에서도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20대의 제시와 셀린으로 시작했지만 주인공들의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랑의 온도와 질감도 점차 변해가는데, 그들은 언제나 그들이 직면한 상황과 문제들을 대화를 통해 풀어나간다. 러닝타임 내내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제를 가지고 두 사람은 서로를 끈질기게 꼬집고, 때로는 타이르고, 무너지기도 하며, 그 속내를 고백하게 만든다.

이 세 편을 다 보고 나면 왠지 누군가의 긴 일생을 속독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급하지만 아주 자세히 들여다본 느낌이랄까. 동시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에 관해 잠시나마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루’라는 시간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말하고, 듣고, 사랑할 수 있을지. 하지만 이런 감상도 잠시다. 당장에라도 오스트리아 빈으로 날아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남은 기력을 다 쏟고 만다. 버건디 색 스웨터와 가죽 재킷과 손질 안 된 수염, 그리고 유로패스는 언젠가의 멋진 ‘하루’를 위해 아껴둔다.